성지 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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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관구

성지 관구의 오늘 야포에서 이주민과 함께 하는 아우구스티노 형제

  • 성지대표부 (frnc)
  • 2018-02-04 16: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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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형제들이 중동땅에 도착한지 800년이 되었다. 그리고 이 여정이 시작되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 그러나 800동안, 작은 형제들은 거룩하 장소를 보호하고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소임과 봉헌은 바뀌지 않았다. 이것은 성지 관구의 오늘을 알기 위해서, 우리는 형제들과 함께 형제들의 이야기로 시작해야 한다. 형제들은 세계 여러곳에서 왔고, 각기 다른 나라와 한 형제마다 특별한 소명을 가지고 있다.  

아우구스티노 펠라요 프레고소(Br. Agustin Pelayo Fregoso OFM) 형제는 멕시코 출신이다. 수 년 동안 성지 관구에서 봉사하였다. 그는 자신의 성소 여정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시작하였다. 교황 프란치스코가 될 한 사람을 만났다. 그 때 그 분은 아직 추기경이셨다. 그는 몇 나라를 여행하였고, 6개국을 사용할 수 있다. 현재, 그는 야포에 있으며 성 안토니오 성당 수호자로 봉사하고 있다. 

형제는 어떻게 성지 관구를 알게 되었습니까?
저는 관광 안내 면허를 취득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종교적 환경아래 대학에서 공부하는 젊은이를 위한 기숙사에 있었습니다. 3년 동안 그곳에서 지냈습니다. 그 젊은이들은 성지 순례를 자주 하였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열정적이었고, 자주 성지를 다녀오곤 하였습니다. 저는 왜 그들이 성지를 가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공부를 계속하는 동안, 저는 저의 성소에 대해서 고민하였고 저는 교구 신학교에 진학했습니다. 저는 주교좌 성당 예식에 전례지기였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저는 알지 못하는데 누군가 성지에 관하여 썼습니다. 그들이 저에게 말하기를 “만약 너가 원한다면 너가 관광 안내를 공부하였으니 너는 성지 안내를 할 수 있다. 교회를 위한 봉사를 하여라.” 저는 이것을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 저의 길을 알기 위해서 이 체험을 하도록 권고하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저는 타볼산의 리카르도(Ricardo) 형제에게 연락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멕시코에 왔습니다. 그는 수도복을 입고 있었는데 저에게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이것은 금지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당신이 수도복을 입는다면 당신은 혁명이후에는 안전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저는 신학교에서 학위를 마치고, 그때,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성지 관구에 입회할 것을 결심하였습니다. 

당신의 여정은 무엇과 같았느냐?
제가 브에누스 아이레스(Buenos Aires) 그리고 로마에 갔습니다. 저는 수도복을 받았고 에인 카렘(Ein Karem)에서 수련을 받기 위해서 성지로 왔습니다. 세 나라에서 3년 동안 이 과정을 밟았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베들레헴으로 갔습니다. 두 번째 인티파다(Intifada, 역자 주: 1987년부터 시작된 이스라엘에 대한 저항운동으로 팔레스타인 민족의 민중봉기이다)가 있었던 어려운 때 였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깊은 영향을 준 체험이었습니다. 그 때, 저는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4년 동안, 4개의 공동체, 4개의 나라, 4개의 언어를 사용했는데, 왜냐하면 아랍어를 공부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 때, 저는 이집트에서 언어 공부를 했습니다. 저에게 전례가 다르고 피라미드 근처에 위치한 콥트 교회 작은 형제들의 공동체와 함께 한 것은 매우 좋은 체험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저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성 구세주 수도원에서 신학을 4년 동안 공부하였습니다. 
서품 전에, 성지 관구장은 저를 유학을 보내어 법을 공부시키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서품 전 날 밤,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관구장은 저를 몬테팔코(Montefalco)의 청원소 부청원장으로 보냈습니다. 저는 시골 사람들과 함께 본당에서 일했고 프란치스칸 영성을 계속 공부하였습니다. 저는 작년에 학위를 받은 다음 베파겟(Betfage)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리스도교 안내 센터(Christian Information Center)에서 소임했습니다. 이곳에 오기전에 프란치스칸 성지 재단에서 일했습니다. 

현재, 성지에서 당신의 소임은 무엇이냐?
프란치스칸 은사는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형제애, 단순함, 그리고 당신의 자유로운 선택으로 개방하는 것, 그리고 그들이 요청하는 곳으로 떠날 수 있는 것 등이 있습니다. 교회는 회사처럼 일해서는 안 됩니다. 
 2016년 9월에 야포(Jaffa) 공동체의 책임자로, 본당 부책임자(Parochial Vicar)로 왔습니다. 현재 저는 6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스페인어, 이태리어, 포르트갈, 영어, 아랍어, 히브리어를 할 수 있다). 공동체에는 4형제가 함게 살고 있으며, 이주민을 위해서 일하고 있습니다. 야포에는 인도인 이주민이 상당수 있습니다. 
 몇몇 공동체가 있는데: 우리는 아랍어, 인도어, 필리핀어, 아프리카어 그리고 영어로 미사를 봉헌 합니다. 다른 성당, 성 베드로 성당에서 우리는 대사관에서 이태리 사람들과 함께 온 라틴 아메리카 사람들을 위한 미사를 봉헌하였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어를 사용하는 이들(아랍어를 모르는 신자)을 위해서도 미사를 봉헌합니다. 제가 미사를 봉헌하지 않을 때, 헌금을 세거나, 주일 활동을 사람들과 함께 준비하는 책임 맡습니다.  
지금, 저는 인생의 또 다른 길을 알게 된 기회를 가졌서 행복하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신앙에 관하여,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관하여, 결과적으로,  우리는 같은 구약 즉 근원이 같습니다.   

어떤 동기로 당신의 소임과 영적인 생활을 하고 있느냐?
제가 사람들과 함께 여기에 있을 수 있는 동기는 그들의 삶이 보여주는 단순성에 있습니다.  저는 그들이 겪고 있는 불법 체류자의 두려움을 나도 겪어 보았기 때문에 그들을 이해할 수 있다고 자주 말하곤 합니다. 제가 18살, 미국에 갔었을 때 였습니다. 저는 입국 비자를 받았지만 취업비자는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대학 등록금을 벌기 위해서 일을 해야 했습니다. 이 경험은 이들이 감당하는 희생과 어려움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매주 토요일 이들을 만나는 것은 정말 기쁜일 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여러 체험과 그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주고, 이해하고, 용기를 줄 누군가가 되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당은 이주민들이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입니다. 이들은 체포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늘 갖고 일하고  있으며, 성당에 와서 그들은 비로소 자유롭게 됩니다. 그들은 자신이 받아 들여지고 집에 온 듯한 편안함을 느깹니다.  

식별하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줄 메시지가 있느냐?
제 생각에 모든 이들이 자신의 행복을 찾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부르심을 받는다면, 당신은 좋은 체험을 하게 될 것이고, 개방될 것입니다. 이것은 당신이 무엇을 잘 할 수 있어서가 아니고 당신이 하는 것을 당신이 원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도 한 형제가 저에게 해 준 말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어디든지 앞으로 나도록 이끌어 주는 한 줄기의 빛이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의심의 어둠도 있다. 그래서 그 빛을 볼 수 있는 것은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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