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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자렛 : 주님 탄생 예고 성당

  • 성지대표부
  • 2015-09-22 10: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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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자렛은 히브리어의 ‘수호자’ 또는 ‘파수꾼’을 의미하는 ‘나자르’에서 연유하는 것으로 예루살렘에서 137km,  갈릴래아의 티베리아에서 29km, 하이파에서 41km 떨어진 곳으로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골짜기이다.

 

   청동기 시대인 기원 전 3000-2000년 전부터 사람들이 살고 있었던 곳이기는 하지만, 역사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곳이다. 그래서 나자렛은 구약성서에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탈무드나 유대의 역사학자 요세푸스 플라비우스의 기록에도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필립보가 나타나엘을 만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예언자들도 기록한 분을 만났소. 나자렛 출신으로 요셉의 아들 예수라는 분이오”라고 하자 나타나엘은 필립보에게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하고 반문하며 의아해 했다는 요한복음사가의 이야기를(요한 1,45-46참조) 이해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지방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지만 복음사가들은 예수님을 “나자렛 사람”(마태 2,23) 이라고 부른다. 복음서를 살펴보면 “나자렛 사람 예수”(마태 26,71; 마르 14,67; 마르 16,6), “나자렛 사람 예수님”(마르 1,24; 10,47; 루가 18,37; 루가 24,19; 요한 18,5; 요한 18,7; 요한 19,19), “나자렛 출신 예언자 예수님”(마태 21,11) 그리고 “나자렛 출신 요셉의 아들 예수” (요한 1,45) 등이다. 특별히 십자가 위의 명패에는 “유다인들의 임금 나자렛 사람 예수”(INRI = Iesus Nazarenus Rex Iudaeorum)라고 쓰여 있었다.

 

   나자렛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구원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기 때문이다. 헤로데 대왕 시절 요셉과 약혼한 마리아가 이곳에 살고 있었다(마태 1,18―2,23; 루가 1,26-27; 2,4 참조). 그리고 헤로데가 죽자 이집트에서 돌아온 아기 예수님과 함께 마리아와 요셉이 성가정을 이루어 살던 곳이다(마태 2,19-23; 루가 2,39-52).

 

   주님 탄생 예고 대성당은 마리아의 집터였다고 하는 곳에 1960년부터 짓기 시작하여 1969년에 완성된 것인데, 그 자리에 세워진 다섯 번째 교회이다. 5세기 초에 성모 영보가 있었던 동굴 위에 작은 경당이 세워졌으나, 614년에 페르시아 군인들에게 파괴되었다. 그 후 십자군 시대에 큰 규모의 성전이 지어졌으나 다시 1263년에 이슬람들에 의해 파고 되었고, 1632년, 1730년, 1877년, 1969년에 성전이 지어지지만 지진과 전쟁등으로 파괴 되었으며 현재의 대성당은 1969년 3월 24일 가로데(Garrone) 추기경에 의해 축성 되었다.

 

    대성당이 자리하고 있는 이곳은 1954년부터 11년간에 걸친 고고학 발굴을 통해서 수많은 동굴과 물 저장소, 곡식 저장소, 기름틀 뿐만 아니라 비잔틴 시대의 성전터도 찾아냈다. 현재의 성모 영보 동굴은 헤로데 시대에 속하는 가정집으로 마리아가 살았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이 곳에서는 3세기경에 해당하는 시나고가 건물의 일부도 발견 되었는데 기둥에는 희랍어로 “마리아, 찬미 받으소서”(XE MAPIA)라고 새겨진 돌기둥을 발견함으로써 마리아에게 봉헌된 경당이었을 것으로 확신하게 되었다.

 

    670년의 순례기록에는 “이 성전이 세워진 곳은 마리아가 거처했던 곳으로서 주의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 아기 예수의 탄생을 알린 곳이다”고 전하고 있다. 이런 전통에 의해서 동굴 안에 위치한 중앙 제대에는 라틴어로 “VERBUM CARO HIC FACTUM EST”라고 쓰여 있는데 “이곳에서 말씀이 육이 되셨다”는 뜻이다.

 

     대성당의 2층 성당은 나자렛의 본당 신자들의 주일 미사를 봉헌하는 본당 성당으로 이용되고 있다. 1층에 있는 성모영보 동굴을 볼 수 있도록 설계 되었고, 지붕의 둥근 천장은 성모님을 상징하는 꽃인 백합꽃 모양으로 설계 되었다. 성당 정면의 모자이크는 이태리 작가 살바또레 피우메(Salvatore Fiume)가 가톨릭 교회의 초대 교황인 성 베드로부터 1964년 성지를 방문한 바오로 6세까지의   교황들을 작품화 한 것이다.

 

    대성당 밖의 회랑엔 세계 각국에서 성모님께 봉헌한 모자이크, 세라믹과 나무로 제작한   성화상등이 있다. 성모영보 대성당 안과 함께 각국의 신심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엔 우리나라의 작품도 회랑 중간쯤에 있다.

 

   대성당을 순례하면서 얻을 수 있는 기쁨중의 하나는 성당 안의 색유리(stained glass)가 주는   빛의 아름다움인것 같다. 성당 안에 앉아 묵상하다 보면 성모님께 나타나 예수님을 잉태하게 되리라는 천사가 다시 발현하는 듯한 신비스러움마저 들게 하였다.

 

  대성당의 왼편에는 1930년에 지어진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수도원이 있다. 수도원은 나자렛 본당 사무실이고, 1940년에 설립된 테라 산타(Terra Santa) 학교가 있어서 그리스도 신자뿐만 아니라 아랍 학생등 종파를 떠나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수도원 왼쪽에는 성 요셉 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대성당은 마리아의 집터인 성모영보 동굴 위에 지어진 성당인데 이곳은 1954년부터 1965년까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의 고고학자인 벨라르미노 바가티 신부가 11년동안 발굴작업을 하였다. 이곳에서는 수많은 동굴, 물저장소, 곡식 저장소, 기름틀, 포도즙을 짜내는 틀 뿐만 아니라 비잔틴 시대의 성전터도 찾아냈다. 비잔틴 시대의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이 사용했던 3세기 경의 시나고가의 흔적들도 발굴 하였다.

 

   고고학적인 발굴의 유물들은  대성당 1층 중앙 제대 주위의 세례터와 모자이크들이 남아 있고, 현재 대성전의 크기를 결정했던 십자군 시대의 성전 기둥의 흔적들도 볼 수 있다. 특별히 대성전과 성 요셉 성당 사이에 많은 주거지의 흔적들이 발굴 되었다고 하며, 대성전과 수도원 정원 사이에 있는 박물관 주위에서 몇개의 동굴과 주거지의 형체들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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