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 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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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나

  • 성지대표부
  • 2015-09-22 11: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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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나: 첫 기적 기념 성지


요한복음서는 예수님께서 ‘갈릴래아의 카나’에서 혼인 잔치 도중에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첫 표징을 행하셨다고 전한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표징을 행하셨던 갈릴래아 카나에 계실 때 왕실 관리가 찾아와 아들이 카파르나움에서 아파 죽어가고 있으니 함께 가서 고쳐 달라고 청하자 멀리서 말씀으로써 두 번째 표징을 행하셨다.
갈릴래아의 카나는 ‘나타나엘’을 언급하면서 다시 한 번 더 거론된다. 거의 모든 해석학자들은 여기서 언급된 ‘나타나엘’(요한1,43-50 참조)을 사도 ‘바르톨로메오’와 동일한 인물로 인정하고 있다.유대교 역사가인 요세푸스(F.Josephus)는 로마에 대항한 첫번째 유대 항쟁(66-70년)동안 “카나라는 이름을 가진 갈릴래아의 마을”에 한동안 머물렀다고 기록하고 있다(생애 16,86).
그리고 4세기에 살았던 예로니모 성인은 여호수아기 제19장 28절에서 언급하고 있는 “카나”(가나안 땅을 분배하면서 아세르 지파의 몫으로 상속된 땅으로, 티로의 남동쪽 10Km에 위치한 마을, 현 레바논 지역)와 요한 복음에서 이야기 하는 갈릴래아의 카나를 명백하게 구별하였는데, 갈릴래아의 카나를 매우 특별한 마을로 인식하고 있었다(용어사전 117,3). 예로니모 성인은 예수님의 첫기적과 공생활을 시작한 곳이 나자렛에서 아주 가까운 갈릴래아 지역이라고 덧붙였다.
프란치스칸 ‘뽀지본시의 니콜로’가 1347년에 쓴 글에는 “갈릴래아의 카나라는 마을은 그리 크지 않은데... 거기에는 예수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바꾼 기념 성당이 있다.” 그러면서 그는 “예수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바꾼 물동이에 채웠던 물을 길러온 우물에 대해서 언급”하였다.
1551-64년에 보니파시오(Boniface)신부는 이슬람에 의해 폐허가 된 교회를 발견하였고, 이슬람 신자들이 순례자들에게 기적의 장소였던 곳을 보여 주었다고 전하고 있다.
오늘날 복음에서 언급하고 있는 카나라는 지명은 두 곳이 있다. 키르벳 카나(Khirbet Qana)와 케페르 카나(Kefer Kana)마을이다. 키르벳 카나는 세포리스(Seforis) 북쪽에 있는 나자렛에서 13Km 떨어진 외딴 언덕 꼭대기에 폐허로 남아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무덤과 지하 유골 안치소 등 중세기의 흔적들이 발굴 되었지만 근처에 우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반면 케페르 카나는 나자렛에서 북동쪽으로 6Km 떨어진 갈릴래아 호수 티베리아로 내려가는 754번 지방 도로 변에 놓여 있는 현재는 작지 않은 규모의 지방 도시이다. 1881년 프란치스칸들에 의해 세워진 카나의 첫기적 기념 성당은 마을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이 마을의 서쪽에서 로마인들의 무덤과 함께 우물이 발견되었다.
프란치스칸들은 1641년에 케페르 카나의 유적지를 취득하려고 노력하였으나 거의 200년이 지난 1879년 다마스커스 통치자의 도움으로 겨우 획득할 수 있었다(이미 그리스 정교회는 1566년 카나에 기념 성당을 지었다). 이 시기에 프란치스칸들은 폐허가 된 유적지 근처에 있는 아랍 집에서 살고 있었다. 1881년에 프란치스칸 기념 성당이 봉헌되었고, 1901년에 성당을 보수하면서 현재의 성당 정면이 만들어졌다. 1997년 가을에 성당을 보수하면서 대대적인 고고학 발굴 작업이 실시되었고, 초세기 유대교 시나고그와 그리스도인들의 무덤, 그리고 5세기경의 아람어 모자이크 등이 발굴 되었다.
현재의 성당은 대희년을 맞이하던 2000년에 아랍 본당과 성지 기념 성당으로 재건축 된 것이다.
프란치스칸들이 카나의 첫기적 성당을 1881년에 짓기 훨씬 이전인 1566년에 그리스 정교회는 이미 카나에 기념 성당을 지었고, 예수님의 기적과 관련된 항아리 두 개를 보관하고 있다. 이스라엘 성지 순례를 하다보면 예수님의 흔적이 있는 주요 장소에는 그리스 정교회와 프란치스칸 성당이 함께 있다. 주님의 거룩한 무덤 성지나 탄생 성지, 성모님 무덤 성지와 예수님 승천 경당처럼 장소가 명확한 곳에서는 장소를 나눌 수 없기 때문에 시간으로 나누어 사용하지만(성모님 무덤 성지에 대한 권리는 정교회에 완전히 빼앗겼고, 승천 경당은 이슬람에게 권리를 빼앗겨 승천 대축일 당일만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그 외 오래동안 이슬람의 통치하에 폐허로 남아 있다가 재건된 성당의 경우는 카나처럼 인근에 서로 기념 성당을 가지고 있다.

혼인잔치
일반적으로 혼인 예식은 두 단계에 걸쳐서 행해졌다. 제1 단계는 배우자들 간의 결혼 동의가 증인 앞에서 행해지는 약혼식이다. 약혼은 혼인이 법적으로 성립되는 첫 단계이다. 신부의 아버지 집에서 이루어지는 약혼잔치 동안 신랑과 증인은 준비된 서약서에 서명한다. 이 서약서에는 신부에 대한 신랑의 경제·사회적 책임이 규정되어 있다. 약혼식이 끝난 후 신랑과 신부는 1년 정도 떨어져서 각자의 집에서 지낸다(마태 1,18참조). 신부가 너무 어리면(열두 살 정도에 약혼했다) 결혼을 몇 년 더 연기할 수 있었다. 어떤 경우라도 신부가 의복과 보석을 준비할 수 있도록 최소한 열두 달의 준비기간을 주었고, 남편은 이 기간 동안 집을 마련하고 혼인 잔치를 준비했다.
제2단계는 신부가 신랑을 맞이하고 신랑이 신부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는 예식이다(마태 1,24-25 참조). 보통 혼례는 저녁에 치렀는데, 신부는 축제 분위기 아래 횃불을 든 행렬에 둘러싸여 신랑 집으로 간다. “그때에 하늘나라는 저마다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비길 수 있을 것이다”(마태 25,1)라는 예수님의 비유는 이러한 관습을 반영한 것이다. 이 예식을 거행함으로써 합법적이고 정상적인 결혼 생활로 들어가게 된다. 결혼식이 거행되는 날 신랑은 부모 형제 친척들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신부의 집으로 간다. 이 때 신부의 친구들은 신랑에게로 나아가 신랑을 영접한다. 신부는 집에서 자기를 맞이할 신랑을 기다린다. 신랑이 도착하면 신부의 아버지는 신랑과 신부에게 축복을 빈다. 그 후 신부는 작별 인사를 나누고 신랑의 집으로 간다. 신랑의 집에서 결혼 축하객들이 모인 가운데 화려한 결혼 잔치가 열린다.
신랑과 신부는 미리 목욕을 하고 향유를 바른 뒤 특별히 그날을 위해 아껴둔 가장 아름다운 옷으로 치장한다. 손님들도 가장 좋은 옷으로 단장했다. 적절한 예복을 차려입지 않은 것은 모욕으로 간주되었으며(마태 22,11-13 참조), 묵시록에서는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신랑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처럼 차리고”(묵시 21,2)라는 말로 아름답게 단장한 모습으로 표현 하였다.
가족과 이웃이 모두 집 안이나 안뜰에 들어오면 식사가 시작되는데 손님들은 식사하기 전에 정결례로 손을 씻었다. 이 관습이 카나의 혼인잔치에 묘사되어 있다. “유다인들의 정결례에 쓰는 돌로 된 물독 여섯 개가 놓여 있었는데, 모두 두세 동이들이였다”(요한 2,6). 식사 때 사람들은 마음껏 포도주를 떠서 마셨다. 식사를 하는 동안 사람들은 시를 낭독하거나 축가를 부르며 신혼부부에게 선물을 건넸다. 이런 향연은 신부가 처녀일 경우는 1주간, 과부일 경우는 3일간 지속된다. 축하객들은 매일 바뀌게 된다. 그러나 신부를 동반하고 온 축하객들은 결혼 잔치가 끝날 때까지 계속 머무른다. 이렇게 오랫동안 향연이 계속되기 때문에 잔치 도중에 음식이나 술이 떨어지는 일이 흔히 있을 수 있다. 예수님과 제자들 그리고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혼인 잔치에 참석했을 때 포도주가 떨어졌다. 이 사실을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에게 알렸고 그리하여 예수님은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기적을 행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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