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성지 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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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들레헴-주님탄생 대성당

  • 성지대표부
  • 2015-11-02 10: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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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vento di Terra Santa (작은형제회 베틀레헴 수도원) 


P.O.B. 588
91001 Jerusalem

Tel: 970.2.274.24.25
Fax: 970.2.277.61.71


까사 노바 여행자 숙소
Tel: 970.2.274.39.81
Fax: 970.2.274.35.40


성지 개방 시간
하절기: 06.30 - 19.30
동절기: 05.30 - 17.00


 

베들레헴이 성경에서 처음으로 언급된 것은 야곱의 아내인 라헬의 죽음과 관련하여서이다. 또한 룻기에서는 모압 여자 룻의 생활 터전으로서 묘사된다. 룻의 손자가 바로 다윗 왕인데, 바로 이 다윗 가문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였다. 베들레헴은 예수의 탄생을 통하여 불멸의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예수님의 공생활 동안 자신의 고향을 방문하였다는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135년,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는 주님 탄생 동굴 위에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아도니스(Adonis) 여신을 기리는 숲을 조성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교가 자유화된 이후, 서기 326년에 주님 탄생 동굴 위에 대성당이 지어지기 시작하였다.
384년부터는 예로니모 성인이 주님 탄생 성지 근처 동굴에 기거하며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한 불가타역 성경을 세상에 선물하게 된다.

529년에는 사마리아인들의 공격으로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지었던 대성전이 파괴되고,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에 의하여 다시 한번 대대적으로 건축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614년 베들레헴은 페르시아인들의 공격을 받게 되지만, 주님 탄생 성전과 주님 탄생 동굴은 파괴되지 않고 그대로 남게된다. 왜냐하면 페르시아인들이 성전 안에 들어섰을 때 페르시아인 복식을 입은 동방 박사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1009년 베들레헴은 이집트 이슬람 왕조의 수중에 떨어지게 되었다. 이 때 베들레헴의 여러 대수도원들은 파괴되지만, 주님 탄생 성전만은 피해없이 남게된다. 이는 이슬람인들도 역시 예수님의 탄생 장소를 공경하였기 때문이었다. 당시 칼리프 오마르(Caliph Omar)는 베들레헴을 방문하여 무슬림들은 주님 탄생 성전 안에서 단체나 그룹이 아닌 오직 개인 자격으로만 기도할 것임을 약속하기도 하였다.

1099년 베들레헴에 십자군이 당도하게 되었다. 1101년 크리스마스에는 라틴 왕국의 첫번째 왕인 볼드윈(Baldwin)의 대관식이 베들레헴에서 거행되었다.

1347년 주님 탄생 대성전의 관할권이 프란치스칸들에게 주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1517년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팔레스티나 지방을 점령한 이후, 주요 성지들의 관할권에 불평등한 변화가 오게 되는데, 이때 주님 탄생 대성전의 대부분의 관할권 역시 그리스 정교회로 넘어가게 되었다. 이후 아르메니아 정교회도 주님 탄생 대성전의 일부 관할권을 획득하게 되었다. 1670년 그리스 정교회는 주님 탄생 대성전에 대한 보수 공사를 진행하였다. 그리고 1842년 다시 한번 보수 공사를 진행하였고, 2010년에는 오래동안 미루어졌던 작업인 대성전의 지붕 보수 공사를 세 종파의 합의하에 시행하기도 하였다.

주님 탄생 대성전은 가톨릭을 대표하는 작은형제회와 그리스 정교회, 그리고 아르메니아 정교회 간의 현상유지원칙(Status Quo)이 적용되는 곳이다. 따라서 세 종파간에 성당의 소유권과 사용권이 법으로 규정되어 있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주님 탄생 대성전의 대부분은 그리스 정교회의 소유이나, 성전 제대 왼쪽 부분은 아르메니아 정교회의 소유이고, 구유 동굴의 제단과 구유는 가톨릭 소유이다. 따라서 주님 탄생 대성전 중앙 성전 부분에는 가톨릭 전례를 위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가톨릭 전례는 바로 옆의 작은형제회 카타리나 성당(1881년 건립)에서 진행한다. 또한 주님 탄생 동굴 옆에 위치한 무죄한 어린이들의 경당과 성 요셉에게 봉헌된 경당, 예로니모 성인 경당 및 성녀 파울라와 에우스토키오 경당은 가톨릭 소유이다.

주님 탄생 대성전은 세 개의 큰 수도원의 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모습이다. 세 수도원은 곧 북동쪽에 위치한 가톨릭의 작은형제회, 남서쪽에 위치한 그리스 정교회, 북서쪽에 위치한 아르메니아 정교회를 의미한다. 성전 안으로 진입하는 입구는 허리를 숙이고 들어가야 할 정도로 그 크기가 작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때의 띠 모양의 돌출부분이 입구의 윗 부분에 남아있고, 그 밑으로는 십자군 시대의 입구 흔적이 있으며, 현재의 입구는 그 모든 흔적 아래에 작은 모습으로 위치하고 있다. 현재의 성전 입구는 말을 타고 성전 안으로 들어오는 행위를 막기 위하여 이전보다 더 축소된 모습으로 만들어졌다.

성전 안쪽의 입구쪽 공간은 목재로 만들어져 있으며, 성전 중앙부로부터 분리되어 있다. 대성전의 세로 폭은 53.90미터이며, 가로폭은 26.20미터이다. 또한 48개의 기둥이 4열로 배치되어 5개의 통로를 만든다. 12세기 십자군 시기에 만들어진 모자이크 일부가 중앙 통로 위쪽의 벽면에 남아 육안으로 확인이 가능하다. 또한 1934년부터 2년여에 걸쳐 수행된 발굴 작업을 통하여 콘스탄티누스 황제 시기에 만들어진 모자이크 바닥이 발견되었고, 그 일부가 성전 바닥에 전시되어 있다.

성전의 제대 부분은 주님 탄생 동굴의 위쪽으로 건립되어 있다. 이 제대 부분의 양 옆으로 나 있는 계단을 통하여 주님 탄생 동굴에 닿을 수 있다. 중앙 제대 부분의 왼쪽은 아르메니아 정교회가, 오른쪽은 그리스 정교회가 관할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그리스 정교회가 관할하고 있는 제대부의 왼편 계단을 이용하여 탄생 동굴을 경배한다. 주님 탄생 동굴은 성전의 가장 끝 부분에 위치하고 있다. 주님 탄생 동굴은 하나의 제대로 둘러싸여 있는데, 이 공간의 관할권은 그리스 정교회에 있으나, 바닥에 박혀있는 14각 은별만은 가톨릭 소유이다.

주님 탄생 동굴 오른편으로는 대리석으로 둘러싸인 구유 동굴이 위치하고 있다. 구유 동굴은 가톨릭이 관할권을 가지고 있다. 주님 탄생 동굴을 나와서 아르메니아 정교회 관할의 성전 북쪽부를 통과하면, 1881년 프란치스칸들이 건축한 알렉산드리아의 성녀 카타리나 성당에 다다르게 된다.

매년 전세계로 방송되는 베들레헴 성탄 전야 미사가 바로 이곳 성녀 카타리나 성당에서 봉헌된다. 이 성당의 제대 부분과 프레스코화 등은 프란치스칸 사제인 파리나(Fr. Farina O.F.M)가 작업하였는데, 순례자들에게 단순하면서도 깊은 인상을 남긴다. 카타리나 성당의 왼쪽편으로는 히에로니무스 성인이 생활하였던 동굴로 내려가는 계단이 위치하고 있다. 히에로니무스 성인은 바로 이 동굴들에서 머물면서 불가타 성경을 작업하였다.

카타리나 성당 앞쪽으로는 작은형제회 수도원이 위치하고 있다. 작은 형제들은 매일 오전 5시와 7시 30분에 가톨릭 소유의 구유 동굴에서 가톨릭 미사를 봉헌한다. 또한 매일 오후 3시 45분에는 주님 탄생 성당 전체를 순례하는 행렬 기도를 거행하고 있다.

 

관련 성서 구절

예수님의 탄생과 목자들의 방문 (루카 2, 1-19)

그 무렵 아우구스투스 황제에게서 칙령이 내려, 온 세상이 호적 등록을 하게 되었다. 이 첫 번째 호적 등록은 퀴리니우스가 시리아 총독을 있을 때에 실시되었다. 그래서 모두 호적 등록을 하러 저마다 자기 본향으로 갔다. 요셉도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 고을을 떠나 유다 지방, 베들레헴이라고 불리는 다윗 고을로 올라갔다. 그가 다윗 집안의 자손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와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 등록을 하러 갔는데, 마리아는 임신 중이었다. 그들이 거기에 머무르는 동안 마리아는 해산 날이 되어, 첫아들을 낳았다. 그들은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 고장에는 들에 살면서 밤에도 양떼를 지키는 목자들이 있었다. 그런데 주님의 천사가 다가오고 주님의 영광이 그 목자들의 둘레를 비추었다. 그들은 몹시 두려워하였다. 그러자 천사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두려워 하지 마라. 보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 그때에 갑자기 그 천사 곁에 수많은 하늘의 군대가 나타나 하느님을 이렇게 찬미하였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

천사들이 하늘로 떠나가자 목자들은 서로 말하였다.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알려 주신 그 일,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봅시다." 그리고 서둘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운 아기를 찾아냈다. 목자들은 아기를 보고 나서, 그 아기에 관하여 들은 말을 알려 주었다. 그것을 들은 이들은 모두 목자들이 자기들에게 전한 말에 놀라워하였다.

동방 박사의 방문 (마태 2, 1-12)

예수님께서는 헤로데 임금 때에 유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 그러자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이 말을 듣고 헤로데 임금을 비롯하여 온 예루살렘이 깜짝 놀랐다. 헤로데는 백성의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을 모두 모아놓고, 메시아가 태어날 곳이 어디인지 물어보았다. 그들이 헤로데에게 말하였다. "유다 베들레헴입니다. 사실 예언자가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유다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의 주요 고을 가운데 결코 가장 작은 고을이 아니다. 너에게서 통치자가 나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보살피리라.'"

그때에 헤로데는 박사들을 몰래 불러 별이 나타난 시간을 정확히 알아내고서는,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면서 말하였다. "가서 그 아기에 관하여 잘 알아보시오. 그리고 그 아기를 찾거든 나에게 알려 주시오. 나도 가서 경배하겠소." 그들은 임금의 말을 듣고 길을 떠났다. 그러자 동방에서 본 별이 그들을 앞서 가다가, 아기가 있는 곳 위에 이르러 멈추었다.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더없이 기뻐하였다.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 또 보물 상자를 열고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그들은 꿈에 헤로데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자기 고장에 돌아갔다.

이집트 피신과 무죄한 어린이들의 순교 (마태 2, 13-18)

박사들이 돌아간 뒤, 꿈에 주님의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서 말하였다.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 내가 너에게 일러줄 대까지 거기에 있어라. 헤로데가 아기를 찾아 없애 버리려고 한다." 요셉은 일어나 밤에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가서, 헤로데가 죽을 때까지 거기에 있었다.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내가 내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 내었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그때에 헤로데는 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 크게 화를 내었다. 그리고 사름들을 보내어, 박사들에게서 정확이 알아낸 시간을 기준으로, 베들레헴과 그 온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 아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 그리하여 예레미야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라마에서 소리가 들린다. 울음소리와 애끊는 통곡소리, 라헬이 자식들을 잃고 운다. 자식들이 없으니 위로도 마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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