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 나눔

Pilgrimage to the Holy Land

순례 나눔

56차 이태리 순례 나눔

  • 관리자 (frnc)
  • 2020-02-18 13: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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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9일(토) 둘째 날

 

물의 도시 베네치아.

수상택시(?)를 타고 도착한 프란치스코 섬

프란치코 성인이 1220년 이 섬에 머물며 조용히 기도했던 곳이다.

 

배에서 내리는데 작은 수도원이 눈앞에 보였다. 그리고 선착장에서 수도원까지 쭉 뻗은 길.

배를 따고 오며 물과 하늘, 다가오는 섬들에 잔뜩 들떠서 흥분해 있는 우리를 한방에 조용히 시키시는 듯하다.

한쪽은 벽돌이 역사를 사연을 보여주고 반대쪽은 그 벽보다 더 높은 쭉 뻗은 나무가 절집에 천하대장군 보다 더 당당하다.

 

수사님이 반갑게 맞으시더니 설명도 열심히 해 주셨다. 친절하신데 인물까지 좋으시다. ^^

한때는 40명의 수사님들이 삶을 살았던 곳이지만 지금은 8명이 살고 계시다 한다.

그래서 주말에는 순례객들이 멈물 수 있다며 담에 또 오라며 기분 좋게 얘기하신다.

 

프란치스코의 작은 공간. 그분이 기도했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 한 그 '작음'이 다가온다. 

 

83세 노수사님이 정원을 청소하시는 기계소리가 수도원을 가득 채운다.  그 모습이 지금의 수도원을 대변하는 듯 하다.

일을 제일 많이 하시는 분이라며 농담을 하셨는데,,, 그 큰 기계소리가 오래된 섬을 자꾸 흔들어 깨우는 듯 하다.

 

 

11월 10일(주일) 3일째

 

피렌체.

건축과 예술로 유명한 르네상스의 본고장이다. 이곳을 무대로 활동했던 유명한 천재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브루넬리스키, 단테, 갈릴레오 및 메디치 가문분들,,,

 

산 로렌조 성당

미사에 늦을까봐 어찌나 바쁘게 이끄시는지 짧은 다리를 발발거렸던 곳이다.

브루넬리스키가 착공했지만 갑자기 사망하는 바람에 전면부가 미완성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그 미완성인 상태가 더 매력적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 옆에 작으마한(결코 작지 않다.) 세례당을 볼 수 있는 특권이 주어졌다.

그 안에 반나절은 머물며 봐야하는 성화들이 있다는데 스치듯이 보고 나왔다. 그래도 요즘 한국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세례대를 이해하는데 세례당은 그 모습을 잘 보여줬다.

그리고 옆쪽에 달려 있는 그 유명한 천동문(성서의 장면들이 조각되어 있는 금빛 문)을 볼 수 있었다. 몇 년 전 한국에 온 천동문(일명 천국의 문)을 보며 그 강렬함에 실제 그 자리에서 보고야 말리라 희망했었는데,,, 희망이 이루어졌건만 왠지 한국에서 봤던 그 강렬함을 넘어서지 못했다.

 

산 마르코 수도원 (도미니코회)

도미니칸들은 공부를 많이 해서 설교 강론을 통해 활동했다고 한다. 그래서  도서관이 중요했고 토마스 아퀴나스 같은 유명한 신학자도 계셨다. 강의 때마다 종종 듣던 그분이 머물던 방 앞에 잠시 머물러 본다. 옷깃에라도 그분의 기운을 묻혀 가고 싶다.

수태고지의 배경이 이곳 회랑이라며 신부님이 열심히 설명해 주셨다. (옛날 나자렛 그곳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예수님이 함께 계심을,,,)

영적 여정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지금 여기 내삶의 자리 안에서 그분과 함께 하는 현재라고 강조해 주셨다.

 

우피치

멋진 청년 가이드 덕에 미술관이 재밌게 다가왔다.

사진으로만 봤던 성화들을 직접 만나 살짝 흥분도 되었다. 정말 수태고지 성화는 숱하게 본듯하다. 그리고 한때 충격으로 남았던 건장한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는 성화는 실제로 봐도 역시나 충격이다.

 

산타 크로체 성당

해질녘의 분위가 촉촉하니 참 따뜻하다.

 

 

11월 11일(월) 4일째

 

미사

성 프란치스코의 무덤 자리. 그 곳에서 미사 참례를 하는 은총이 내렸다. 뭐라 표현하기 힘든 묘한 기운이 휘감아 도는 느낌에 미사 내내 조심스러웠고 울컥하고 감정이 올라왔다. 예루살렘 예수님 무덤 자리에서 했던 미사가 떠오르며 묘하게 겹쳐졌다.

"성 프란치스코 당신은 도대체 얼마나 예수님을 사랑하신 겁니까?"

본당에서 하는 매일미사와는 다르게 그 무덤자리에 맞춰서 미사를 준비해 주신 신부님의 맞춤서비스는 그 스승의 그 제자다운 모습이었다.

(전날 밤 아시시가 보이기 시작하면서 신부님 목소리가 들뜨기 시작했다. 얼굴에서 까칠함이 사라지고 행복함이 감춰지지 않으셨다. 사부님이 그리도 좋으실까?)

"저도 성 프란치스코 당신이 좋아질 것 같습니다. "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요셉(?)신부님의 안내로 시몬 신부님 보다 더 작은 목소리의 설명을 들었다. 성 프란치스코의 일대기를 어찌나 잔잔한 목소리로 들려주시는지,,,

그리고 그분의 친필 쪽지. T(타우십자가)

탈출기에 모세가 이집트를 탈출하며 문설주에 발라놓은 그 표시. 그리고 성 프란치스코의 인장으로 사용한 표시.

결국 하느님의 영역이란 표시이고 구분지음이다.

 

새 성당

(성 프란치스코 집터자리로 추정되는 3곳 중 하나)

옷감 장수 아버지, 프랑스인 어머니. 귀족 집안은 아니었지만 성공한 장사꾼 아버지 덕에 부유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성인은 아버지의 사업가 능력보다는 어머니의 사랑을 더 많이 닮으셨던 것 같다.

부모님이 조각상을 보면 어머니가 쇠사슬을 들고 있다. 아버지가 성인을  감금했을 때 어머니가 그 쇠사슬을 풀어준 것을 상징한다.

 

주교 관저

여기서 성 프란치스코가 옷을 벗지 않았을까? 예상한다고 했다. 그리고 부모와 결별하고 태양의 찬가 일부(마지막)를 이곳에서 썼다고 한다.

신부님이 질문을 던지셨다.

- 내가 하느님을 믿고 있는가?

하느님을 믿고 나아갔음에도 실패한 프란치스코가 실패에 무너지거나 돌아서지 않고 그 상황에 어떻게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었을까?

 

성 글라라 성당

성녀 글라라(끼아라)의 유해와 유품, 의복들이 지하에 보관되어 있다.

글라라 성녀는 아시시의 귀족집안에서 태어났다. 성녀는 사순절 성 프란치스코의 설교에 크게 감명받아 18세에 몰래 집을 빠져나와 포르치운쿨라에서 수도복을 받고 그의 제자가 되었다. 이후 검소한 글라라수녀회를 설립했다. 그 당시 여자는 사회적 제약이 많았기에 당연히 봉쇄 수녀회였고 지금도 글라라수녀회는 봉쇄 수녀회이다.

예수님 곁에서 끝까지 시중들던 여인들의 모습이 성녀에게서도 느껴진다. '시중들다.' 자신들의 몫을 알아보고 씩씩하고 당당하게 끝까지 그 몫을 살아낸 모습이 다가온다. 그리고 물음표를 던지신다.

'너는?'

 

다미아노 십자가

손, 천사, 반원(삼위일체), 예수님 얼굴이 하늘을  향해 하느님이심을 드러내고 있다.

성 프란치스코가 전쟁에서 지고 돌아와 고뇌할 때 다미아노 성당에 있던 이 십자가 밑에서 처음으로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

"가서 무너져 가는 나의 집을 고쳐라."

이 십자가는 성 다미아노 성당에서 수녀회가 이전 할 때 성녀 글라라 대성당으로 같이 옮겨와 이곳에 자리하고 있다.

 

성 루피노 성당

성 프란치스코와 성녀 글라라가 이곳에서 세례를 받았다. 

 

 

11월 12일 5일째

 

미사

포르치운쿨라(작은 한 조각)

이 작은 성당을 보호하기 위해 그 위에 지어진  '천사들의 성 마리아 성당'. 마치 어미새가 알을 품듯 그 작고 귀한 조각을 보물처럼 지키고 있다.

성 프란치스코가 왜 그리도 이곳을 애정했는지 조금은 알것 같았다.

고요속에 머무름을 허락하면 좋으련만,,,작고 외진 은둔소를 찾아 기도했던 성 프란치스코도 이런 마음으로 떠나지 앉았을까?

성당 앞에 'Pax et bonum'이라 쓰여 있다. '평화와 선’

 

리보 토르토

강이란 뜻의 '리보' 꾸불꾸불한 강 '리보 토르토'

성인은 양우리가 있던 이 곳에서 있는 그대로의 가난 속에 온전히 주님을 따르는 삶을 형제들과 시작하신 곳이다.(프란치스코회의 시초가 된 곳)

공사중이라 못 봤죠?

뭐든 당연한게 없는 순례였다.

 

카르첼리 은둔소

비가 내리는 산길을 알록달록 우산들이 걸어올라 갔다.

한적한 곳을 자주 찾던 성인은 낮에는 일을 하시고 밤에 이곳에 와서 머무르셨다. 각자가 거처하던 그들의 기도소이자 거처, 토굴. 

내려가서 본 레오 토굴은 토굴이라 하기도 빈약했다. 날것의 느낌과 세월의 흔적,,,정말 작고 보잘것없는 삶이 생생히 다가왔다.

성 다미아노에서 만났던 조각상이 이곳에서는 편안히 누워있다. 그 모습이 자연스럽다. 옆에 눕고 싶을 만큼,,,

 

 

11월 16일 9일째

 

리에띠에서 즐건 아침.

이번 순례가 미사복도 많았지만 숙소복도 많았다. 눈 뜨기 바쁘게 창문을 열고 확인한 하늘,,,이뻤다.

정말 작은 시골 마을. 작은 천을 따라 15분이면 한바퀴를 돌수 있었다. 다리 건너에 있는 학교, 성당(사용을 안 하는 듯), 주택들,,,오랫동안 방치된 집들도 있었다. 역사속으로 들어온듯 오래된 흔적들이 가득했다.

 

오르비에토 두오모

보헤미안 사제인 프라하의 베드로는 성체성혈에 의구심이 들었다. 미사를 집전하던 그는 또다시 "과연, 이 성체성혈이 그리스도의 몸과 피일까" 의구심으로 갈등하던 그는 깜짝 놀랐다. 성찬의 전례중에 성체에서 피가 흘러낼렸다. 성체에서 흘러내린 피는 제대와 성체포 위로 흘러내렸다. 

이 '성체의 기적'을 기념하여 14세기부터 모든 교회가 '성체성혈 대축일'을 지내고 있다.

이곳에 모셔져 있는 성체포에는 아직도 혈흔이 뚜렷이 남아있다.

케이블카(?)를 타고 위로위로 올라갔던 동네인데 기억이 나시나요?

 

미사

구유 성당

그레치오는 중세의 마을로 라체로네 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1223년 겨울 성인은 아기 예수의 탄생이 아주 먼 옛날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여기' 우리 가운데에 현존하는 사건임을 체험하고자 성탄대축일 전야에 동네 사람들을 한 자리에 초대하여 역사적인 그 순간을 재현했다. 오늘날 교회에서 거행되는 성탄구유예절 전통은 이 유명한 구유 사건으로부터 유래한다. 

이 곳 성지에 맞춰서 '성탄미사'를 해 주셨다.

제1독서 이사야서 52,7-10

'얼마나 아름다운가, 산 위에 서서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의 발!'

그 순간 이 성경구절이 너무나 아름답게 다가왔다. 기쁨에 넘쳐 정말 날아갈듯 행복한 그 발이 빛이 나고 설레임으로 가득해 보였다. 해마다 관례처럼 성탄전례에 참여했던 밍밍한 모습과 무덤덤했던 내 발걸음을 보게 하신다. 

"주님, 제 발도 주님으로 인해 기쁘게 뛰고 싶습니다."

신부님께서 하느님의 현존에 대해 강조하셨다. 

"내 안에 있는 선(하느님이 만드신 내 안의 선)을 드러내는 것이 주님의 제자됨이고 주님의 현존이다. 우리는 하느님의 모상이고 그분이 숨(영)을 불어넣은 생명의 존재이다. 주님의 선은 구원은 이미 우리 안에 있다. 세례, 혼인성사 때 자유의지 인지 묻는다. 그리고 '끊어버립니까?'라는 물음에 '예!'라고 답한다."

끊어버립니까?에 그리 많은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다. 

"다가오는 성탄에 당신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무엇을 끊어버려야 할까요?"

 "당신을 드러냄에 지금 내 안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바뇨레지오

성 보나벤투라의 고향. 그가 태어난 곳.

지금은 안전 문제 등으로 그곳에 기거하는 사람이 없다. 비수기라 다리를 지나는 관광객들도 적었다. 불켜진 가로등처럼 비오는 무채색 도시가 외로워 보인다.

그 도시를 바라보며 한 줄로 성 프란치스코와 성 보나벤투라가 기도하고 잠시 머물렀던 동굴로 내려갔다. 지금은 다리 건너로 가는 문은 닫혀 있었고 그 자리에 수녀님들이 앉아 계셨다. 못 알아듣는  데도 열심히 설명해 주셔서 그곳을 지키는 분들인 줄 알았는데 그분들도 순례중이라 하셨다.

신부님이 일찍 주무셨는지 참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이였다. 축축함이 넘치고 희미하게만 보여주심에도 그 또한 감사했다.

 

 

11월 17일 10일째

 

미사

산타 마리아 마죠레 대성당

(성모 설지전)

서방에서 제일 먼저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된 성당이다. '눈의 기적'으로 인해 '눈의 성모'라는 칭호를 얻은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하였으며, 매년 축일 미사에 돔에서 하얀 장미꽃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기적을 기념하고 있다.

교황님께 처음으로 한국교회를 알린 곳이고 한국교회의 소식을 들은 교황님께서 눈물을 흘리신 곳이다.

평신도 주일임에도 신부님께서 강론을 해주셨다.

독서와 복음은 부활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는데 신부님은 성화(그림)를 통해 설명하셨다.

"예수님의 신성을 강조했던 고통, 표정이 없는 모습(하늘에 오르신 예수님)과 인성을 강조한 고통, 피맺힘의 예수님(빵이 되고 사람이 되신 예수님)이  지금 우리를 벗이라 부르고 계신다.

친구 예수님이라 부른다. 하느님은 저 높은 곳에 계신 분이 아니라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신 분이다."

 

성 요한 라테라노 대성당 

성 요한 세례자와 성 요한 복음사가 대성당이다. 로마에 있는 가장 오래된  성당이자 성 프란치스코가 교황님을 만나 수도회 회칙을 인준 받은 곳이다.

최고의 지위에 있던 교황님과 가장 미천한 수도생활을 하던 성 프란치스코의 만남. 인간적인 기준으로 본다면 엄청난 사건이지만 하느님의 기준으로 본다면 지극히 당연한 일상이지 않을까?

 

성 계단 성당

헬레나 성녀가 예루살렘에서 가져다 라테라노 궁전에 설치했던 것을 현재의 위치로 옮겨 놓은 것이다. 예수님의 수난과 고통을 함께 한다는 의미에서 순례자들이 28개의 나무로 덧씌운 돌계단을 무릎으로 오르는 전통이 있다. 우리도 그 계단을 올랐지요?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순간이었다.

예루살렘 무덤성당의 돌계단도 겹쳐지고 어디서 온지도 모르는 수많은 순례자들, 화려한 금빛 벽과 닿고 닿은 28개의 계단, 기도와 눈물과 수많은 삶들이 함께 했던 그곳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 의미는,,, 그분께서 차차 알려주시겠지요. 이 일을 '기억함'이 지금의 몫인것 같습니다.

 

바오로 대성당 

성밖에 바오로의 무덤자리 위에 세워졌다.

성당 입구와 성당 안에 칼을 든 바오로의 석상이 있다. 참수형(로마 시민권자는 최소한의 고통으로 사형을 집행)을 받은 그의 순교와, 교회의 수호자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주 제대 아래쪽에 사도 바오로의 유해가 보관되어 있다. 지금은 완전히 밀폐되었으며 그 자리를 표시하는 작은 등불만이 켜져 있다.

성당 내부 벽을 따라 둥근 판에 초대 교황인 사도 베드로부터 현 교황에 이르기까지 초상화가 모자이크로 제작되어 있다.

교황님의 의자가 제대쪽에 자리하고 있다.

커피 한잔의 유혹에 넘어 가서 달콤한 시간을 즐겼던 곳이기도 하다.

쌓이는 피로에 힘들어도 행복한건 달콤한 커피 한잔 때문이기도 했다. 찐하게 씁쓰레한 고소함.(인생의 참맛이라고도 한다) 

에스프레소를 사랑할 수 밖에 없다.

가격도 참 착하다. 1유로.

 

카타콤바

지하 묘지라는 의미이다.

성밖에 있는 이방인들의 묘지였으나 박해시에 신자들이 숨어서 전례 행위를 하던 곳…

 

 

11월 18일(월)  11일째

 

미사

성 베드로 대성당

기다리던 그곳, 어쩌면 이번 순례의 종착점이 아닐까?

미사 시간에 늦으면 들어갈 수 없는 곳이라며 챙기고 또 챙긴 덕분에 일찍  도착했다.

제의실은 계속되는 수많은 미사전례로 신부님들과 복사(?)들이 수시로 들고나고 하였다.

준비하고 나오신 신부님을 따라 내려간 지하 경당. 지하 가운데를 중심을 양쪽으로 작은 경당들이 여럿 있었다.

제대 밑, 베드로의 무덤에서 15미터 거리에 있는 경당에서 미사 참례를 했다. 

그 곳에 맞춰 준비하신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미사였다.

베드로와 바오로로 세례 받은 두 아들의 엄마로써 이 큰 잔치에 초대받은 기쁨은 특별했다. 그리고 어쩌다보니 무대를 싫어하는 내가 이 특별한 미사에서 독서를 하게 되었다. '주님이 마련하신 이 잔치에 제 몫이 맞나요?'

복음은 마태오 16,13-19

예수님께서 카이사리아 필리피(온갖 좋은 것이 가득했던 풍요가 넘쳤던 도시) 지방에서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 하느냐?"

제자들의 대답을 들은 예수님은 다시 물으신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왜 풍요가 넘치는 그곳에서 그런 질문을 던지셨는지 장소적 의미를 생각해 보라고 하셨다.

 

바티칸 박물관

미사를 보고 나오니 하늘이 파란빛을 띠고 있었다. 바티칸에 오면 교황님 옷자락이라도 볼거라는 희망 섞인 농담은 농담으로 끝나고 교황님 집무실 창문만 쳐다봤었다. 

박물관 들어가는 긴긴 줄을 서고 기대감에 들어섰지만 시장통처럼 정신이 없었다.

스치듯 지나가는 진행속도에 어쩌다 익숙한 그림이 반가울 뿐이었다. 바티칸 박물관 중 가장 유명한 시스티나 부속성당의 최후의 심판도 천정의 천지창조도 전쟁을 치르듯 인파속에 스쳐갔다. 그 곳이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가 열리는 바로 그곳이라는 것도 희미했다.

 

포로 로마노

'로마인의 광장'아란 뜻으로 로마인들이 모여 살던 생활 중심이며 계속 발굴되고 있다. 이곳에서 정치인이 장외연설을 하고, 법을 집행하고 종교전례가 진행되고 시장이 서기도 했다.

희망하던 콜로세움은 차창밖으로만 몇번 보여주더니 콜로세움 동생같은 건축물을 이곳에서 만났다.

눈 앞에 개선문도 보였지만 눈으로만 봐야했다.

 

아라첼리 성당.

캄파돌리오 언덕…

 

 

 

- 56차 순례자 현영미 안젤라 자매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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