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 관구 소개

Franciscans in the Holy Land

성지 관구 소개

성지 관구 소개

작은 형제회의 기원에서부터

성지에서의 프란치스칸 현존은 1209년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에 의해 창설된 작은 형제회의 여명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작은 형제회는 수도회가 창설된 때부터 해외 선교 활동을 수행하여 왔다. 성지 관구는 전체 수도회를 관구 단위로 분할한1217년 총회 결정에 의해 탄생하게 되었다. 이후 성지 관구는 이집트에서 그리스 너머까지의 지중해 남동부 연안 지역을 관할하게 되었다. 성지 관구는 당연히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신 땅과 우리 구원이 신비가 그곳에서 실현된 성지들로 이루어져 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성지 관구는 ‘모든 관구들의 진주(眞珠)’로, 또한 해외 선교지로서는, 작은 형제회가 전 세계에 세운 ‘모든 선교지들의 진주(眞珠)’로 불리었다. 성 프란치스코는 시리아, 이집트, 그리고 팔레스타인을 여행하는 동안 1219년부터 1220년 사이 몇 개월을 이곳에서 머물렀다. 바로 이 시기에 가난한 작은 형제 프란치스코와 술탄 멜렉 엘 카멜(Melek-el-Kamel)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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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는 십자군 전쟁 동안 전선을 뛰어 넘어 당시 적장으로서 간주되었던 술탄과 만나서 대화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프란치스코의 행동은 대화에 있어서의 예언적 모범이며 타문화 존중의 표지였다. 이는 현 세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시사해 주는 바가 큰 모범인 것이다.그와 같은 정신은, 그리스도교 신자이건 비신자이건 상관없이 지역민들에게 봉사하면서 근동에 살고 있는 작은 형제들의 영적으로 또 인간적으로 어려운 삶에 지속적으로 활기를 불어넣어 주고 있다.


1263년, 이 지역의 작은형제들의 활동을 더욱더 효율적으로 촉진하는 과정 속에서 ‘성지 관구 (the Province of the Holy Land)’는 몇 개의 작은 ‘보호관구들 (Custodies)’로 재편성 되었다. 이리하여 사이프러스 보호 관구, 시리아 보호 관구, 그리고 본래 의미의 성지보호 관구가 탄생하게 되었다.


성지 관구에는 아코의 성 요한 수도원, 안티오키아 수도원, 시돈 수도원, 티로 수도원, 예루살렘 수도원, 쟈파 수도원 등이 포함되었다.이 기간 동안 성지의 작은 형제들은 주로 십자군들 안에서 사도직을 수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