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 관구 역사

Franciscans in the Holy Land

성지 관구 역사

성지 관구 역사

성지 관구 역사 (1291-현재)

1291년,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십자군 근거지였던 아코의 성 요한 시(市)가 이슬람의 손에 넘어가게 되었다.
이에 작은 형제들은 당시 동방 관구 본부가 있던 사이프러스로 피신하게 된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형제들은 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 지방에 있는 여러 성지들에서의 현존을 이어가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당시 교황 요한 22세는 성지 관구장에게 매년 두 명의 형제를 성지들에 파견할 수 있는 허락을 주었다. 이러한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작은 형제들은 모든 가능한 형태의 사도직을 계속해서 수행해 나갔다.


1322년부터 1327년까지 형제들이 주님 무덤 성당에서 봉사하며 현존하였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몇몇 성지들에 대한 법적 소유권과 그 장소들을 다른 이들을 위해 사용할 권리를 갖게 되는 작은 형제들의 결정적 성지 복귀가 이루어진 것은‘안죠의 로베르토’와 왕비 ‘마요르카의 산챠’의 관대한 후원 덕분이었다.


1333년 작은 형제 ‘루제로 가리니’(Ruggero Garini)의 중재를 통해서 형제들은 이집트 술탄으로부터 최후 만찬 성지를 획득하게 되고, 거룩한 무덤 성지에서의 전례 거행권을 가지게 되었다. 더불어 이 중재를 통하여 작은 형제들이 그리스도교 전체를 대표하여 이러한 권리를 행사하게 된다는 사실이 확립되었다.


1342년 교황 클레멘스 6세는 나폴리 왕가의 이러한 계획과 활동을 승인하면서 이 새로운 단위에 대한 세부 사항들을, <그라찌아스 아지무스(Gratias Agimus)>와 <누페르 카리시매(Nuper Carissimae)>, 두 칙서를 통하여 결정하였다. 작은 형제의 어느 관구 소속 형제이든지 성지에서 일할 수 있었고, 일단 성지 소임을 하게 되면 “예루살렘 시온산 수도원장”으로 불리던 성지 관구장의 법적 권한 하에 있게 되었다.


작은 형제들의 성지에서의 지속적인 현존과, 복음화 및 그리스도교적 가치 증진에 대한 이들의 헌신은 지역 교회 발전에 있어서 결정적 요소로 작용하였고, 더 나아가 1847년 라틴 총대주교좌의 복귀까지도 가능케 하였다. 그 이후로 성지 관구와 총대주교좌는, 각자의 소임을 수행해 나감에 있어, 형제적 협조 정신을 가지고 일하고 있다.


오늘날 성지 관구는 전 세계에서 온 형제들로 구성되어 국제적 성격을 띠는, 작은 형제회 내의 유일한 관구이다.
어떤 형제들은 자신들의 수도자로서의 삶과 양성을 시작할 때부터 성지보호 관구로 입회하기를 선택하는가 하면, 또 어떤 형제들은 장,단기적으로 일정 시기 성지에서 봉사하기 위해 성지보호 관구를 선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