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mmissariat in Korea for the Holy Land
주요활동
2003. 11. 02
2003. 11. 23
2005.
2005. 09. 26
2005. 09. 26
2009. 02.
2009 ~ 2011
2012. 02.
2014. 12.
2017.
2017. 12. 02
간행물
성지 보호구, '성지의 프란치스칸’ 호명환, 정장표
주님의 성지에서 봉사한 형제들
한국 관구 형제들의 성지 보호구 진출은 1977년 안선호 베다 형제의 파견으로 시작되었다. 안선호 형제는 ‘성지 봉사’라는 측면 외에도 많은 면에서 기억할 점이 있는 형제다. 특히 작은형제회 한국 관구의 첫 사제 형제로서 성지로 떠나기 전까지 수도회가 한국 땅에 뿌리 내리는데 많은 역할을 하였다. 1924년 2월 5일, 충남 공주의 순교자 집안에서 태어난 안선호 형제는 1940년 서울대교구 소속으로 소신학교(중학교)를 마치고 1944년 서울 동성 고등학교에 속한 소신학교를 졸업하였다. 이어서 신학대학에 입학했으나 강제 징용으로 일본군에서 복무하다가 1945년 8월 15일 해방 뒤에 다시 학업을 재개하였다.
수도 생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안선호 형제는 대전에 진출해 있던 캐나다 성 요셉 관구 형제들을 만난 뒤 작은형제회 입회를 결심하였고, 소속 장상인 서울 대교구장 노기남 주교의 허락을 받아 1945년 10월에 입회하였다. 1947년 10월 캐나다에서 수련을 시작하였고, 이듬해 첫 서약을 발하였으며, 1951년 11월 1일 성대서약(종신서약)을 발하였다. 그리고 1953년 6월 21일 사제로 서품되었고 같은 해 이탈리아 로마 안토니오 신학대학에서 교회법 박사 과정을 시작하여 1956년 6월 학위를 취득하였다. 이후 대전 목동 수도원 수호자, 삼천포 본당, 부산 아미동 연락소, 3회 영적 보조자, 서울 정동 수도원 수호자, 서울 신학 대학 교회법 강사, 대전 소년 마을 원장, 부 봉사자, 관구 경리 등의 소임을 수행하다가 1977년 이스라엘 성지 소임을 시작했다.
이후 안선호 형제는 충실하고 의욕적으로 성지 보호구의 여러 소임, 즉 주님 무덤 성당, 겟세마니 성지, 최후 만찬 수도원, 성 구세주(보호구 본부) 수도원, 순례자 안내, 순례자 고해 성사 등 다양한 성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였다. 안선호 형제는 성지에서 소임하는 동안 성인이 되겠다는 강인한 의지를 기도와 삶의 모범으로 보여주었기에 성지 보호구의 많은 젊은 형제들은 안선호 형제를 살아있는 성인으로 불렀다. 또한 안선호 형제를 만났던 수 많은 한국 성지 순례자들과 성직자들 역시 안선호 형제의 헌신적인 성지 봉사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안선호 형제는 성지 소임 기간 동안 한국 형제들을 위하여 영적, 물적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35년을 성지에서 많은 신자들과 형제들의 공경을 받으며 살았던 안선호 형제는 2012년 12월 12일 과달루페의 동정 마리아 축일 미사 후 성당 가대에서 개인 기도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가기 위해 계단을 오르다가 쓰러졌다. 다음 날 인근의 성 요셉 병원 응급실로 옮겨 CT촬영을 하였으나, 이미 뇌출혈이 많이 진행되어 수술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이후 병원 간호사들과 신자들의 극진한 간호 속에서 외롭지 않게 88세의 일기로 자매인 죽음을 맞이하였다(2012년 12월 19일 21시 30분).
본래 성지 보호구는 형제들의 장례가 생기면 1일 장을 관례로 하고 있으나, 안선호 형제의 경우 한국 관구 형제들이 도착한 이후인 12월 22일 15시에 장례 미사를 거행하였다. 장례 미사 장소는 성 구세주 수도원 성당이었고, 성지 부 봉사자가 주례하였다. 또한 당시 한국 관구 봉사자인 기경호, 관구 사무국장 김일득, 강효식, 정장표 형제 등이 미사에 함게 하였다. 김상원 테오필로 형제를 비롯한 성지 보호구의 많은 형제들과 지역 신자들 및 한인 교민 공동체 신자들도 참석하여 고인의 마지막 길에 함께 하였다. 장례 미사 후 성지 보호구 형제들과 한국 관구 형제들은 마지막 안식처인 시온산 묘지까지 행렬 전례를 함께 하였고, 고인은 기경호 형제의 하관 예절로 묘지에 안장되었다. 장례미사 후 안선호 베다 형제의 유품도 정리하여 가지고 돌아 왔다. 3월 18일에는 많은 형제들이 모인 가운데 서울 정동 수도원 1층 성당에서 추모 미사가 거행되었다. 6월 관구 평의회는 안선호 형제의 기념 표지석을 성거산 관구묘지에 설치하기로 결정하여 관구 사무국장 김일득 모세 형제와 관구 묘지 담당 원유성 형제가 협의하여 진행하였으며 10월 7일 성거산 관구 묘지에 안선호 형제의 기념 묘지를 완성했다.
안병호 베드로 형제
이후에도 한국 관구에서의 성지 파견은 계속 진행되었다. 그 중 안병호 베드로 형제는 두 차레 걸쳐 성지에 파견되었다. 1차 파견은 1994년 1월 12일에 관구 평의회의 승인을 얻어 같은 해 4월 22일 성지 파견을 위해 이탈리아로 출국함으로써 이루어졌고, 이후 약 8년간의 성지 소임을 마친 후 2001년 7월에 한국에 귀국하였다. 이 기간 동안 안병호 형제는 주님 무덤 성당, 주님 채찍 성지, 최후 만찬 수도원, 베들레헴 주님 탄생 성지, 나자렛 성지 등에서 제의방 소임을 수행하였다. 안병호 형제의 2차 파견은 2005년 1월부터 2009년 7월까지였다. 이 기간 동안 안병호 형제는 카파르나움 성지의 경리와 부수호자, 타볼산 성지의 제의방 소임을 묵묵히 수행하였다.
김상원 테오필로 형제
현재, 성지에서 조용하면서 중요한 현존을 이어가고 있는 한국 관구 형제는 김상원 테오필로 형제이다. 김상원 형제는 2005년 7월 18일 총봉사자로부터 성지 소임 임명(Obedientia)을 받았고, 이후 줄곧 성지 보호구의 일원으로 생활해 오고 있다. 김상원 형제는 성지 파견 이후 현재까지 12년째 주님 무덤 성당의 전례 소임을 살아가고 있다. 주님 무덤 성당은 그 삶의 특성상 오랜 기간 소임하기가 무척 힘든 곳이지만, 김상원 형제는 강인한 소명 의식으로 주님 무덤 성당의 중요하고도 고된 전레 소임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다. 또한 자신에게 주어진 짧은 휴가 기간을 이용하여 성지대표부 주관 성지 순례단에 대한 순례자 안내 봉사도 몇 차례 수행하며, 신자들에게 큰 영적 기쁨을 선사하였다. 이 외에도 김상원 형제는 성지에 관한 블로그를 운영하며 신자들에게 성지의 역사, 현황, 활동에 관한 정보를 지속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그 외의 성지 파견 형제들
위에 소개한 세 명의 형제들 이외에도 몇몇 한국 관구의 형제들이 성지 소임을 살아갔다. 전윤진 로베르토 형제는 1988년 5월 26일에 성지로 출국하여 4년 간의 성지 파견을 마치고 1991년 11월 12일 한국으로 귀국하였다. 1990년 4월에는 강효식 야고보 형제가 성지로 파견되었으며, 약 3년 간의 성지 파견 생활을 마친 후 1992년 5월 6일 한국으로 귀국했다. 또한 1996년 약 2년 간 나경원 요한 마리아 형제가 예루살렘의 주님의 거룩한 무덤 성지에서 봉사하였다.